결핍서 비롯된 극한의 고독 [주말을 여는 시]

패션2024-03-29 20:12:116568

결핍서 비롯된 극한의 고독 [주말을 여는 시]

하린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김언희 시인의 또 하나의 고; 독
주체가 받아들이기 나름인 고독
변화무쌍한 고독과 화자의 관계
파국으로 치닫는 극한의 상태


또 하나의 고; 독 

소금 구덩이 속의 염소 같던 고독, 말을 하면 할수록 말이 안 나오던 고독, 목구멍 깊숙이 허연 소금 산이 빛나던 고독, 문고리에 목을 걸고 수음을 하던 고독, 목을 졸라 주지 않으면, 수음조차도 할 수 없었던 고독, 시 같은 건 개나 주라지, 머리와 따로 노는 가발을 쓰고, 이건 19禁이 아냐, 사람禁이야. 읽는데 십 팔년, 잊는데도 십 팔년, 낄낄거리던 고독, 성령의 비둘기가 번번이 똥을 깔겨 축성해 주던 고독, 시뻘건 대낮에 헛씹을 하고, 소문 난 헛제사밥을 나눠 먹던 고독,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 때문에 눈을 감을 수가 없어, 두 눈이 시뻘겋던 고독, 사내란 십중팔구가 지뢰 아닐까, 오밤중에 문자를 보내던 고독, 걸쭉한 고깃국물 같은 안개 속에서 등을 돌리던 고독, 윤곽도 형체도 없이 뿌우연 안개로 풀어지던 고독, 꿈에 본 고독, 자신의 두개골을 깨진 화분처럼 옆구리에 끼고 서 있던 고독, 죽기도 전에 GG, 두 음절로 본인의 부음 먼저 전한 고독, 가지 못했을 수 있는 곳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고독, 입을 봉투처럼 벌리고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받아먹는 고독, 이제 나와는 계산이 끝난 고독,

*파스칼 키냐르, 
 「현대문학」, 2018년 1월호 .

김언희
·1989년 현대시학 데뷔
·청마문학상 등 다수 수상
·시집 「트렁크」 등 다수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고독孤獨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뜻한다. 혼자 의지할 데 없이 외떨어져서 극한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한번이라도 느껴본 당신은 알 것이다. 힘이 센 고독의 근성을, 끈질긴 고독의 집요함을…. 

고독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얼굴과 부정적인 얼굴. 그렇다고 고독이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고독에 처한 주체가 어떻게 그 고독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얼굴은 달라진다. 자발적 고독이나 생산적으로 고독을 승화시킨 경우엔 긍정적 얼굴이지만, 피폐화된 자의식을 갖거나 외로움을 극단적으로까지 몰고 가면 부정적 얼굴이 된다. 

시인들에게 고독은 존재성을 극대화하는 실감적 정황이거나 참된 본질을 향한 직관적 질료로 쓰인다. 김언희 시인의  「또 하나의 고; 독」은 그러한 시인들의 특징을 확연히 대변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도입부부터 수많은 고독의 정황들이 감각적인 언술에 의해 나열돼 있다. 이것은 단순한 병치가 아니다. 알게 모르게 하나의 귀결점을 향해 움직이는 이미지들의 점진적 '이어달리기'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소금 구덩이 속의 염소 같던 고독"이 먼저 제시된다. 짠맛을 내는 소금은 보통 나트륨으로 인식되는데, 그 안에는 '나트륨 40%+염소 60%'의 비율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소금=나트륨'이라는 인식하에 염소 성분을 잊는다. 그것처럼 비율을 많이 차지하는데도 존재감을 상실한 성분이 고독이다. 따라서 "말을 하면 할수록 말이 안 나오던 고독, 목구멍 깊숙이 허연 소금 산이 빛나던 고독"은 모두 존재성을 가지지 못한 고독이 자신을 드러낸 방식인 셈이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 슬픔을 안고 고독은 이제 "문고리에 목을 걸고 수음"하는 극한적 자기 위안을 감행한다. 극한적 자기 위안의 반복으로 고독은 "목을 졸라 주지 않으면, 수음조차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뒤틀린 상태에서 터져 나오는 언어 배설을 시작한다. "시 같은 건 개나 주라지, 머리와 따로 노는 가발을 쓰고, 이건 19禁이 아냐, 사람禁이야. 읽는데 십 팔년, 잊는데도 십 팔년"하고 자조적인 위악성을 드러낸다. 고독적 결핍에서 비롯된 화자의 냉소적인 태도는 그 이후에도 계속된다. "성령의 비둘기가 번번이 똥을 깔겨 축성해 주던 고독, 시뻘건 대낮에 헛씹을 하고, 소문 난 헛제사밥을 나눠 먹던 고독,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 때문에 눈을 감을 수가 없어, 두 눈이 시뻘겋던 고독, 사내란 십중팔구가 지뢰 아닐까, 오밤중에 문자를 보내던 고독"이 바로 그런 화자의 태도를 반영한 언술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화자에게 위악과 냉소와 의심을 던져주던 고독이 떠나려 한다. "걸쭉한 고깃국물 같은 안개 속에서 등을 돌리"고, "윤곽도 형체도 없이 뿌우연 안개로 풀어"진다. 종국에는 화자에게 분리돼 "자신의 두개골을 깨진 화분처럼 옆구리에 끼고 서" 있다가, "죽기도 전에 GG, 두 음절로 본인의 부음 먼저 전한"다.

GG는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e스포츠 경기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Good Game, Give up the game'의 약자다. '졌지만 우린 잘했어. 좋은 게임이었어' 정도의 의미이기에, 고독이 화자에게 "넌, 나와 함께 잘 싸웠어. 무너졌지만 좋은 인연이었어"라고 말한 것과 같다. 

고독의 죽음은 곧 화자의 죽음을 나타낸다. 한 몸처럼 붙어있던 고독이 죽는다는 것은 결국 고독과 함께 화자가 깊은 죽음 속으로 뛰어내렸다는 뜻이다. 화자와의 '계산'을 끝낸 채 고독이 "입을 봉투처럼 벌리고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받아"먹는 형상을 통해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김언희 시인은 결핍에서 비롯된 극한의 고독이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본질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또 하나의 고; 독」에서 제시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고독은 힘이 무척 세다. "가지 못했을 수 있는 곳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가지 못했을 수 있는 곳"이 죽음이나 파멸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고독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잘 다스려야 한다. 제목에서 쓰인 문장부호 세미콜론(semicolon)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은 한국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문장부호인데, '결과+원인'이 존재하는 경우에 쓰이기도 한다. 의지할 데 없는 극한 상태인 '고孤'. 그것의 원인은 철저하게 혼자됨을 나타내는 '독獨'이다. 그러니 우리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독'을 품어선 안 된다. 

하린 시인 | 더스쿠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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